시작

다이아몬드와 함께한 일생

비비안 베커는 로렌스 그라프를 오직 보석을 향한 헌신적인 열정과 천재적인 사업성의 소유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시작한 로렌스 그라프는 그의 일생에 거쳐 세계 정상들과 왕족, 그리고 문화계의 아이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주얼리 업계의 일인자로 우뚝 서 있다고 말합니다.

60여년 전, 런던의 주얼리 거리인 하튼 가든에 위치한 쉰들러 공방의 보석사 의자에서처음 느꼈던 다이아몬드를 향한 강렬한 열정이 지금의 로렌스 그라프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항상 저를 매료시키는 존재였습니다. 가까이 관찰하고 더 깊이 연구하여 순도와 컷팅방식을 파악했던 게 기억납니다. 이러한 본능적인 끌림이 평생의 열정으로 변한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항상 저를 매료시키는 존재였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다루는 일이야 말로 내 삶의 이유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로렌스 그라프는 이렇게 회상합니다.”15살 때 처음 견습공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중앙예술교육학교에 가서 직업훈련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린 로렌스 그라프는 견습공으로 생활한 지 삼개월만에 당시 사장 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의 품질 완성도가 형편없으며 앞으로도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돌아보면 그 말에 주저앉기보다는 오기가 더 생겼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마음을 더 다잡고 연습에 몰두했습니다.”전설적인 기업가 본능과 추진력도 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력과 근성은 저희 집안 내력입니다. 결국 성공에 꼭 필요한 의지를 타고 난 겁니다.”

그라프가 첫 회사를 설립한 건 18살, 이제 막 청년이 된 무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숙련된 보석공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한동한 작업을 함께 한 후, 저는 그에게 동업자로써 함께 사업을 시작해 볼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공방을 차리고 보석 수리를 시작했죠.”로렌스그라프의 사업여정을 따라가보면 그의 기업가적 특성, 기회를 포착해내는 재능,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돋보입니다. 그러한 일화는 초장기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그는 다이아몬드 상인을 만나 스몰스톤 33개를 60파운드에 선공급해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33개의 다이아몬드 링을 만든 게 아니라 스톤을 전부 한 개의 링에 배치해서 굉장한 광채를 창조해냈죠. 그 링은 잉글랜드 북쪽의 보석상에게 판매했어요. 런던에 돌아오자마자 그 상인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링이 벌써 팔렸고 바로 또 하나를 주문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할만한 독특한 링을 창조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다이아몬드 하나를 놓고 그 주변에 여섯개의 스톤을 배치하고 또 그 겉에 12개의 스톤을 놓는 방식으로 총 19개로 이루어진 스톤 클러스터를 만들었죠. 올 다이아모든 링을 완성한 후 에머랄드, 루비, 사파이어 작업도 시작했습니다.” 그라프 다이아몬드는 1960년에 설립되었고 이 년 후 런던에 첫 두 부티크를 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얼리 산업은 공방을 기반으로 도매가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방식이기도 했죠. 그런데 종종 이단아라고 불리기도 하던 그라프는 보다 흥미롭고 모험적인 주얼리를 선보이기 위한 창작에 몰두하였습니다.

여러 나라의 고객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던 그라프는 1967년 마침내 자신의 디자인을 보다 넓은 세계로 내보낼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여러차례 세계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자주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보다 성공적인 전시회들을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그라프는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하면서 여러번 그러한 행운이 따랐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관찰에 따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력과 열정 역시 성공하기 위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라프의 브랜드는 세계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랜시간, 조심스럽게 공들여 해외 부티크를 늘려 나갔습니다. 2000년 모나코의 호텔 드파리 내에 첫 해외 부티크를 오픈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50개 이상의 부티크에 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길 로렌스 그라프만큼 진귀한 다이아몬드를 많이 다루어 본 보석상은 당대에도, 아마 그 어느 시대에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로렌스그라프는 그가 마주했던 모든 고객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는 이러한 것이야 말로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보너스같은 것이라고 기쁘게 인정했다. “저는 수많은 고객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제 아들인 프랑소와 역시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그라프 는 가족 기업입니다. 부티크에 방문하여 보석을 사는 고객은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구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든 보석을 사랑하니까요. 우리에게는 정말 진정으로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주얼리 작품을 내보일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합니다.

흔히 말하길 로렌스 그라프만큼 진귀한 다이아몬드를 많이 다루어 본 보석상은 당대에도, 아마 그 어느 시대에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진귀하고 과거를 간직한 역사적인 다이아몬드이면서 감탄할 만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합니다. 결국 앞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가 될 운명을 지닌 겁니다.

육십년 전 산업에 처음 진출한 이래 4개의 퀸즈 어워드를 거머쥐고 퀸즈 버스데이 명예전당 리스트 OBE에 오르는 등 로렌스그라프는 다수의 영광스러운 수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계속 느껴왔던 그 흥분은 여전합니다. “저는 처음 그라프를 설립할 때 느꼈던 다이아몬드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지금도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매일 볼 수 있다니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로렌스 그라프는 다이아몬드의 유산을 기리를 것과 동일하게 그가 쌓아온 유산을 나누고 있습니다. 사업은 점차 다각화되고 세계로 확대되고 있지만 하우스오브그라프는 여전히 가족경영체제로 산업의 최정점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산을 공유함으로써 그라프 보석과 장신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인 보석으로써의 위치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비안 베커는:

비비안베커는 보석의 역사를 다루는 최고의 권위자이자 수상에 빛나는 저널리스트, 파이낸셜 타임즈 “How to Spend It”의 편집자이다. 보석, 불가능한 콜렉션(Impossible Collection of Jewellery), 환상적인 코스튬 보석과 그라프(Fabulous Costume Jewellery and Graff)등을 포함한 보석에 대한 광범위한 저서를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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